다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황희정승이 길을 가다가 밭을 가는 농부에게 검은 소와 누렁 소중에 누가 더 일을 잘하냐고 묻자,
농부가 잠시 일을 멈추고 이랑을 뛰어 넘어 정승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둘 다 일을 잘하지만 누렁소가 조금 더 잘하지요" 라고 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큰 비밀이라고 그 길을 뛰어나와 귀엣말을 하는가?"
그러자 농부가 말하길,
"아무리 동물이라 한들 제 부족함을 말하는데 기분이 좋겠습니까"
한때 일에 미친듯이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것처럼 일했습니다.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 덕에 늘 성장했고, 성장에 맞는 보수를 요구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매우 존경하고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진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밭은 내 밭이 아닙니다.
그 옛날 농부는 누렁소와 검은 소를 모두 일하게 하는 현명함이 있었습니다.
농부가 만약 소들이 듣도록 "둘 다 일을 잘합니다"라고 했다면 소들은 그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겠지만,
귓속말을 통해 황희정승에게 말한 더 일잘하는 소가 나인지 궁금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동료의 연봉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밭의 수확물은 농부의 것이고,
소들이 먹는 건 여물이라는 것입니다.
농부로선 소들이 이 밭이 자기 것인냥 착각하게 하거나,
여물을 더 많이 먹기 위해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시켜줘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농부는, 또는 소는, 열매가 모두 내거라는 것을 너무 빨리 티를 냅니다.
소들에겐 코뚜레가 있지만, 사람에겐 생각의 코뚜레가 있습니다.
이 사회는 갈수록 여물은 적게 주면서 더 많은 일을 시키고 그 열매는 농부가 가져가고 있습니다.
이미 코뚜레를 한 소들에게 더 여물을 줄 필요는 없겠죠.
그나마 괜찮은 여물을 주는 곳이 몇몇 대기업으로 줄어들고 있어 더욱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남의 밭도 내 밭인듯 일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 높은 실력을, 더 많은 연봉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그래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 밭은 내 밭이 아니고, 대부분의 농부는 여물을 더 줄 생각이 없습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기회가 될때 내 밭을 갖던지, 충분한 여물을 쌓던지
아침, 아내와 나눈 이야기가 이 글의 시작이었습니다.
어제 상사로부터 업무에 대한 협박?을 받은 제 이야기에 아내는 관둬도 된다고 흔쾌히 동의해 주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월 천만원의 소득이 생긴다면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꺼야?"
"나는 그러면 카페 같은 걸 하면서 하루 3시간만 일하고 싶어. 일은 조금씩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제 질문의 답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저희도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밭에서) 일을 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충분한 여물이 있다면 "내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에겐 지금 하는 일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셈입니다.
물론 어쩌면 카페를 한다고 좋아할지는 모르고, 카페에 대한 환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와 별개로 아내에게 최소한 지금 하는 일은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셈이죠.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좋아했었습니다.
돈을 벌지 않더라도 제가 하는 일이 다시 재밌어진다면 다시 열심히 달리고 싶습니다.
그게 남의 밭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좋은 농부의 밭이 아니고, 저는 늙고 배부른 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직하게 일하는 다른 누렁소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몇년전부터 일을 관두려고 했었던 건데,
이미 여러번의 기회에도 농부와의 인연을 뿌리치지 못했죠.
어제, 일을 더 많이 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연봉동결이나 팀전환을 요구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해오던 간섭을 이제 하지 않고, 이젠 팀원들을 넘겨주고 결과로만 평가하시겠다고 하시더군요.
대신 열심히 해서 이 미친듯이 일이 넘치는 밭을 함께 열심히 갈자구요.
물론 상사가 그러시지 못할 거란 걸 압니다. 이 밭은 원래 그랬으니까요.
설령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이미 이 밭이 내 밭이 아니라는 것을 안 저는 열심히 하지 못할 것을 압니다.
연봉을 동결하든, 팀을 전환하든, 짜르든, 저는 주어진 환경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여물과 코뚜레가 없는 소를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 그 소가 밭에 대한 나쁜 기억을 갖고 있다면 말이죠.
저에게 필요한 건, 작은 제 밭입니다.
작년, 온전히 나만의 업무가 있었습니다. 다른 팀 동료와 나의 결과를 만들어냈죠.
최근 몇년간 회사 업무중에서 가장 좋았던 일인듯 합니다.
비록 그것의 열매가 제것이 아니어도 일의 성취감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저에게 여물이 아닌 온전한 성취감을 준 셈이죠.
다행히, 저는 충분한 여물이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제 밭을 만들어 가려고 합니다.
많은 곡식이 나오지 않아도 관계가 없죠.
저에게 필요한 건 성취감이기 때문입니다.
(나쁜 분은 아니지만) 욕심많은 농부의 성취감을 위해 여물로 협박해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멘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제 상황이 속상한가 봅니다.
언젠가 열매에 기뻐하는 날이 오면 좋겠고, 동료에게 미안하지 않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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